교양학교가 끝나고 과내 학회들 사이에 가볍고 치열한 회원유치전쟁이 있었다. 지금은 남아있는 자료도 거의 없고 내 기억에도 남은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당연히 쓸 수 있는 거라곤 유일하게 남아있는 셈틀마을에서 뿌린 소개집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셈틀마을 소개집은 28동에서 있었던 수업이 끝나고 나눠준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일반물리가 끝난 다음이었나보다.
하여튼 셈틀마을 소개집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학회가 특히나 돈이 많은가보네'라는 거였다. 예상 밖으로 묵직한 부피에 꽤 고급스러운 종이질. 게다가 심상치 않는 내용까지!
셈틀마을 소개집을 펼치면 먼저 머리말과 함께 어쩐지 유명할 것 같은 교수들의 이름이 주욱 써있고 그 뒤로는 수학·과학 경시대회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23쪽까지 이런 내용이 이어지다가 24쪽부터 비로소 셈틀마을에 대한 소개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학회라는 걸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 소개집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냥 학생들끼리 꾸려가는 게 아니라 저명한 교수들도 참여하고 더구나 경시대회라는 것에까지 관여한다니, 얼마나 위대하고 부담스런 학회냐구! 절대 가볍게 볼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소개집을 보고 놀란 건 새내기인 나뿐이 아니었다. 이 소개집을 만든 셈틀마을 선배들도 놀랐는데 그 까닭인즉슨, 셈틀마을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물론 책자에 넣어달라고 의뢰한 적도 없는 수학·과학 경시대회 얘기가 20쪽 넘게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본소 아저씨 왜 사람을 놀래키고 그러셔요?
☞ 셈틀마을 - 그것을 알려 주마 : 93학년도 학회 소개집 보기
참고로 표지에서 '셈틀마을'을 만들고 있는 뒷배경에 있는 작은 글자들은 모두 '셈틀마을'이다.
책자의 내용을 보고서야 다시 떠올린 거지만, 원래 이름은 셈틀마을이 아니라 'network'였다. 이 학회 뿐만 아니라 과내 다른 학회들도 거의 아니면 모두가 외국어 이름이었다. 그랬던 것을 92년 학회 이름 순우리말로 바꾸기 운동으로 셈틀마을로 바꾼 것이라 한다. 잘했다.
셈틀마을이라는 이름에서는 컴퓨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선배들은 이 학회는 절대 컴퓨터 학회가 아니라고 여러번 강조하곤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그래도 우리 (셈틀 93학번)는 엑셀과 C 언어를 공부했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세희와 난 상익이까지 끼워서 4학년 되던 겨울에 유닉스까지 공부했다.
컴퓨터와 전혀 관계가 없는 주제에 대해 세미나도 했지만, 기억나는 거라곤 나랑 상균 오빠가 책상 양쪽 맨 끝에 앉아서, 의대를 나와 슈퍼마켙을 하며 돈을 더 잘 버는 사람 얘기 (이건 상균 오빠가 꺼냈음. 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음)를 해서 (뒤에 세희 말로는) 사람들을 정신없게 만들었다는 것 정도.
셈틀마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삽질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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