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신문

아! 선생님, 마음도 넓으셔라.

중학교 2학년 때 가정 선생님 얘기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서울로 전학온 나는 한마디로 서울 물정 모르는 소녀(!)였고 만화가게는 절대 가서는 안 될 곳이었다. 그러나 친구가 학교에 가져온 만화책은 읽어도 된다. 히히.

황미나의 '아뉴스데이'를 하루 동안 다 읽느라 고생했다 정말. 수업시간 중간중간에도 읽어야지 그러다보니 어디 책 순서에 맞게 읽을 수 있나?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거지. 결국 내용이 뒤죽박죽 되어서는 옛날옛날에 누가누가 살았는데 나중에는 모두 죽었대요 끝.

친구가 학교에 가져온 건 만화책만이 아니었다. 파름문고에서 나온 책들도 몇 권 가져왔는데 다행히도 이건 며칠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 때 빌려본 책이 올훼스의 책 3권, 베르사이유의 장미 3권, 청춘 에이스 한 권, 그리고 안젤리크 두 권. 책의 형태는 소설이지만 사실 내용은 만화다.

우선 대여섯권을 빌렸는데 책을 둘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마침 내 옆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이 책들을 내 옆 자리의 의자 위에 놓아 두었다. 뭐 선생님만 안 보시면 되는 거니까.

드디어 수업 시간. 마침 가정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책상 사이 사이를 다니시던 선생님께서 내가 놓아둔 문제의 그 책들을 발견하신 것이다. (당시 이 책들은 금서나 다름없었다)

흐억! (내가 놀람)

흐어억! (책 빌려준 친구가 놀람)

"거기에 놓아 두면 어떻게 해~"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그 책들을 집어 들으셨다. 일순 교실 내에 정적이 감돌고. 과연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인가?

아마도 저 책을 압수당하고 나는 학생부에 불려가서 혼날 테고 친구에게는 책값을 물어줘야겠지. 아! 왜 이리도 조용하단 말인가? 그런데

"나도 너희들만할 때 이런 책 읽었지. 그래 너희들 마음 이해한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정확하진 않지만 거의 이런 내용이었다) 그 금서들을 그 자리에 그냥 내려놓고 계속 수업을 진행하셨다.

휴우~ (내가 안도의 숨을 내쉼)

휴우우~(책 빌려준 친구가 안도의 숨을 내쉼)

교과목을 잘 가르치시는 선생님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그냥 실력있다고만 말할 뿐이지.

재미있는 얘기를 잘 해주시는 선생님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그냥 재미있다고만 말할 뿐이지.

그러나 "나도 너희들만할 때 이런 책 읽었지. 그래 너희들 마음 이해한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은 존경한다. (그 수업 끝나고 우리 반은 한바탕 난리였다. 선생님 멋져요!라고.)

4334-06-30 | 황미자 | 황씨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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