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갑자기 앞문이 열리거나 누군가 노크를 할 때가 있다. 수업을 방해하지 않으면 안 될 무슨 중요한 일이 생겼기 때문인데…
백발백중 예방주사 놓으러 보건소에서 사람이 온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날 아침부터, 아니 벌써 며칠 전부터 그런 흉흉한(!) 소문이 학교에 돌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책상 밑에 숨기도 한다.
학생부 선생님께서 두발 검사를 하러 오신 것이다. 예방주사 때와 같은 공포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지만 기분 나쁘기는 마찬가지. 일부 학생은 이름이 적히고 내일까지 머리 자르고 검사 받으러 오라는 엄명을 받는다.
노크하고 앞문이 열리는 일은 없다. 예방주사 놓으러 보건소에서 사람이 나오지도 않고 두발 검사 하러 학생부 선생님이 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돌연히 앞문이 열리는 일은 분명 있다. 뒷문이 열리지 않거나 어디가 앞문이고 어디가 뒷문인지 도무지 헤깔리는 경우, 수업에 늦은 학생은 앞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온다.
고 1 때도 한 번 이런 일이 있었지만 중학교 때, 특히 중 1 때 이런 일이 여러번 있었다.
수업 중 누군가 앞문 앞을 서성이면 (노크도 하지 않는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아셨는지 앞문을 연다. 그리고 거기 계신 다른 선생님과 은밀히 어떤 얘기를 나누시고는 다시 교실에 들어와 한 학생을 불러 데리고 나가신다. 그 학생은 교실 밖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교실에 들어올 때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다. 자기 자리에 돌아온 그 학생은 주섬주섬 책가방을 꾸리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야?"
누군가 묻지만 대답은 없다. 그 학생은 책가방을 들고 서둘러 집으로 간다.
그 학생이 교실을 나가고나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그 학생의 아버지가 조금 전 돌아가셨다고.
그런 일을 여러번 겪다보면 별 이유 없이 교실 앞문이 열릴 때마다
'이번에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일 수도 있고 어머니일 수도 있으니, 부모님 중 어느 한쪽이 안 계신 아이에게는 그 공포와 두려움의 확률이 반으로 줄어드는 행운일 게다. 편모 또는 편부 슬하여서 좋은 점도 있다는 얘기.
내일 당신은 어느 아이의 아버지에게 한 잔 술을 권하면서,
내일 당신은 음주운전으로 어느 아이의 아버지를 치어 죽이면서,
내일 당신은 부실공사로 언젠가 어느 아이의 아버지를 그 건물에 깔려 죽게 함으로써,
그 어느 아이에게 '앞문이 갑자기 열릴 때 받는 공포와 두려움'의 확률을 반으로 줄여주는 선행을 베풀게 된다. 당장은 슬픔일지 몰라도 먼훗날을 바라보면 그 아이에게 행운이 될 선행이다. 당신은 참으로 인정 많고 착한 사람이다.
시니컬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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