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사람들 중에 나를 '건강한 사람'으로 기억해 주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꼭 쓰러진 경험이 있기 때문만은 아닌 듯 싶다. 초등학교 때에는 한 번도 쓰러진 적이 없으니까. 그럼 언제부터 픽 쓰러지기 시작한 걸까? 아니 쓰러지기 시작한 건 아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를 냈을까?
아,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난 나 스스로를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비록 엄청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약한 몸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큰 병을 앓는 것도 아니며, 특히 내게는 깡이 있고 정신력이 있다. 암.
그다지 더운 날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만 중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때 맨 앞에 서 있었는데 당시 짝이었던 친구가 나를 부축해 줬고 어느 체육 선생님께서 업고 교실로 데려다 주셨다. 교실에 거의 다 와서부터는 그 선생님은 가시고 내 짝이 대신 업고 (!) 왔다 (짝은 나만큼 마른 애였음).
우선은 교단 위에 눕혔고 잠시 후 내가 약간의 기력을 되찾은 다음 숙직실로 데려갔다 (그 학교에는 양호실이 따로 없었고 숙직실은 따뜻한 온돌방이어서 자기에는 안성마춤이었음). 바로 옆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 서무실에 근무하는 큰언니가 불려온 건 말할 것도 없고.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1 km 정도였는데 걸어서 갈 때도 있었고 가끔씩은 차부에 가서 버스를 타고 가기도 했다 (학교 가는 길 중간에 차부가 있었음).
차부에 도착했는데 버스가 막 떠날 찰라였고 난 급하게 뛰어 버스를 탔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사실 괜찮은 게 아니라 몰랐을 뿐) 중간쯤 갔을 때 갑자기 하늘이 도는가 싶더니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부축을 하고 어찌된 일인가 했을 때는 버스가 이미 학교 앞에 도착해 있었고 내가 거기 다니는 중학생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나한테 물어봤으니까) 어느 고등학생 언니가 나를 데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나서는 다른 한 사람이 내 책가방들을 들고 따라오고 그 언니는 나를 업고 학교까지 그 비탈진 길을 걸어 올라왔던 것이다. 아무리 내가 몸무게가 적게 나갔다고 해도 그 길은 정말 비탈진 길인데 (다녀본 사람만이 알지), 그 때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들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언니라고 했다.
물론 나는 또 숙직실에 가게 되었고 또 다시 큰언니가 불려온 건 말할 것도 없다.
그 전날은 중국의 (아마도) 북경대 화학과와의 학회가 있었다. 22동 1층에 있는 세미나실에서였는데 그 때 난 바깥의 복도에 있었고 거기가 얼마나 추운 곳인지는 역시 다녀본 사람만이 안다.
그 다음날 늦게 일어났고 아침에 먹은 무우 빼고는 하루 종일 거의 먹은 게 없었다. (무우 날로 먹는 걸 좋아함) 엄마랑 큰오빠는 인천에 가셨는데 저녁 늦게까지 오지 않으셨다.
저녁이 되자 슬슬 배가 고파진 나는, 밥은 도저히 차려 먹기 싫었기 때문에 빵과 마실 것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날은 쌀쌀했지만 걸어서 5분도 채 되지 않는 곳에 가게가 있었기 때문에 입은 옷 그대로, 즉 무릎까지 오는 치마에 스타킹도 신지 않고 무릎까지 오는 반코트를 입고 나갔다 (이 반코트, 아는 사람은 알 텐데 짙은 남색의 학생복 스타일 코트로 대학 졸업 당시 사은회에도 입고 갔었고 그 뒤로도 많이 입었음).
기분도 그렇고 날도 춥고 해서 가게까지는 랄라랄라 뛰어 갔다. 먼저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빵집에 가서 팥빵과 크림빵을 사고 가게를 나오는데 어째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어! 이상한데. 빨리 집에 가야겠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빨리 해서 중간에 있는 동네슈퍼에 들어갔다. 거기서 우유랑 기타 등등을 좀 많이 샀는데, 역시 그 가게에서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줌마가 빨리 계산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아! 거기서, 그 가게에서 그대로 좀 더 머물렀어야 했는데. 하지만 난 그와는 반대로 집에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서둘러 가게에서 나온 나는 발걸음을 좀 더 빨리 했고…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서 쓰러졌다. 자동차가 다니는 그 길 한 가운데서.
쓰러진 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쓰러지면서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쓰러진 건 이 때가 처음이다.
하여튼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주변이 어두웠기 때문에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약간의 정신이 든 나는 곧 내가 쓰러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에 창피한 생각은 거의 없었다. 다만 날이 매우 추웠고 또 그곳은 자동차가 빈번히 지나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대로 있다가는 차에 치이겠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그래서 몸을 추스려 겨우겨우 일어나 움직였는데… 몇 발짝 떼지도 못하고 또 쓰러졌다.
이번에 쓰러진 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번에도 또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이다.
다시 정신이 든 것은 어느 아주머니가 날 깨웠기 때문이다. 길에서. 그 때 생각해 보니 길 한가운데에서는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길 가의 자동차 옆까지 갔던 것 같은데 지금 쓰러져 있는 곳은 그 자동차 옆이 아닌 것이다. 아, 또 이 때의 황당함이란.
친절하게도 아주머니는 나를 부축해서 아주머니의 집까지 데려가 주셨다. 아주머니의 집은 바로 그 근처였기 때문에 그나마 쉽사리 갈 수 있었다. 난 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현관 앞 부엌 바닥에 누워 버렸고 아주머니는 이불을 가져다가 덮어 주셨다.
따뜻한 곳에 있으니 그제서야 조금 정신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는 걸 느끼게 됐다. 특히 입 안에 이상한 변화를 알게 됐는데, 앞니가 빠져 버린 느낌이 혀로부터 느껴지는 거였다. 그 때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아! 이젠 치과에 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됐구나.'
아주머니는 웬 젊은 아가씨가 길에 쓰러져 있으니 자꾸만 무슨 병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물으시고 (-_-;;)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 집에 연락해야 된다고 하시는데, 난 병은 없고 집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는 말만 겨우겨우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흐른 후 난 집에 가야겠다고 몸을 일으켰다 (그 집 애들이 신기한? 아니면 어이없는? 이것도 아니면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데, 게다가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그 집에 더 있을 수 있을까). 혼자 가겠다는 걸 굳이 아주머니가 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그러길 잘 했지 안 그랬으면 오다가 또 쓰러졌을 게 뻔하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앞니가 빠진 게 아니라 앞니가 부러져 있었다. 그래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
방에 누우니 떠오르는 생각이란 '이제 무우는 다 먹었구나' (앞니가 그 모양이니 딱딱한 날 무우를 어떻게 먹을 수 있으리오).
엄마랑 큰오빠가 돌아온 건 밤 늦게였고, 그 어이없는 상황에 엄마는 가지 말라고 말릴 때 말 듣지 말고 일찍 왔어야 하는데 그래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셨다. 그리고 엄마를 보자마자 내 눈엔 눈물이 핑 돌더란 얘기.
이 때의 사고로, 얼굴 오른쪽이 심하게 부었고 앞니 하나가 부러졌고 양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손은 거의 다치지 않았는데, 그 때 사가지고 오던 빵과 음료수들이 완충작용을 해 준 덕이다.
치과에는 부기가 빠진 며칠 후에 갔는데, 머리도 많이 아팠을 뿐만 아니라 (두통은 진짜 오래 갔다) 부러진 앞니의 신경이 노출돼서 죽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또 이 때의 사고를 교수님이나 치과 의사선생님께 설명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도 거울을 보면 (내 생각에는) 얼굴 오른쪽이 더 커 보인다. 또 무릎의 상처는 치료를 게을리 해서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다.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난 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흉터가 남은 건 중 3 때의 사고와 이 때의 사고 때문에.
특허사무소에 입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을 때. 정확히는 1999년 3월 8일 월요일 아침 8시 50분 경. 장소는 구로공단에서 강남쪽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 역삼역을 바로 코 앞에 둔 곳.
교대역까지도 멀쩡했는데 강남역으로 가면서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래서 문 앞 쪽에 서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문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역시 이번에도 정신을 완전히 놓아 버려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고 걱정을 했지만 난 그저 창피한 생각에 전철이 역삼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마자 그대로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몇 발짝 가지 못해 또 쓰러졌다.
다행히도 이 때 어떤 아가씨와 어떤 아저씨가 도움을 주셔서 (특히 그 아가씨) 날 부축해 벤치에 눕혔고 그 아가씨는 역 관계자가 올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핸드폰까지 빌려준다고 했는데, 핸드폰을 사용할 정신도 아니었지만 또 전화해서 뭐라고 하란 말인지?
'저 역에서 쓰러져서 지금 못 가요.'
라고 말하란 얘기인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무소에다가?
청소부 아주머니는 내가 체한 것 같다고 손도 따 주셨고, 역무원 아저씨와 함께 날 부축해서 역무실까지 데려가 주셨다. (도저히 움직일 기력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냥 벤치에 누워 있겠다고 했지만 역무원 아저씨는 여기는 춥기도 하고 또 사람들 보는 눈도 있기 때문에 역무실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또 역무실에 가서 직원들 잠깐씩 눈 붙이거나 하는 침대에 한 시간 동안 누워 있었다.
회사에 가서는 역시 쓰러졌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참고로 이 때 입고 있던 코트가 바로 세 번째 쓰러졌을 때 입었던 그 코트. 그 뒤로 이 코트를 싫어하게 됐다.
또 이 때의 사고로 깨닫게 된 것은,
1) 세상에는 정말로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 많다.
2) 전철역의 역무원과 청소부 아주머니는 친절하다. 아니,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친절할 수도 있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친절하다.
이다.
이 사고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다면 1999년 4월 25일자 황씨신문에서 '지하철에서 생긴 일'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번에도 역시 1999년.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질 못하겠고 네 번째 사고 이후 한 달 쯤 후인 것 같다. 장소는 2호선 신림역.
구로공단역에서 전철 들어오는 것 보고 계단을 뛰어올라 급하게 전철을 탔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좀 지나면 괜찮으려니 했지만 신대방역을 지나는데 더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3월에 전철에서 쓰러지기 전에 들던 바로 그런 기분. 그래서
'아, 이대로 있다가는 또 쓰러지겠는걸. 중간에 내려서 쉬었다 가야겠다.'
고 생각하고는 신대방 다음 역인 신림역에서 내렸는데, 그만 벤치까지 걸어가지도 못하고 그 중간에 주저앉아 버렸다 (쓰러지기 전 단계). 이번에도 다행히 어떤 아가씨가 부축해 줘서 벤치까지 데려다 줬고, 난 거기에 몸을 기대어 반쯤 누운 자세로 한동안 쉬었다 (사람들 눈 때문에 차마 누울 수는 없었음).
그 뒤로 난 그 이상하고 싫은 기분을 없애기 위해 (전철만 타면, 특히 전철이 지하로 들어가게 되면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하기 때문에), 전철에 타면 책을 읽거나 좋은 것 재미있는 일만 상상하게 되었다. 또 전철을 탈 때 지키는 한 가지 원칙은 '전철이 들어와도 절대 전철역에서는 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안 좋을 때는 안 좋은 것이고. 그 뒤로 또 한 번, 비록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쓰러지기 전에 중간에 전철에서 내려 역 벤치에 한참 앉아 있다가 다시 출발한 일이 있다.
이 일로 해서 난 전철 타는 걸 싫어하게 됐다.
끝으로 하나 더. 난 이 이상한 기분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 비슷한 기분이 들면 안전한 장소(!)를 찾아 그 곳에서 쉬어 간다. 유비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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