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조선일보를 본다. 한동안 신문을 끊었다가 다시 보기로 했을 때 조선일보를 보자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어찌하다 집에 배달 오는 신문을 보니 조선일보였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 갑자기 자전거가 한 대 생기거나 한 건 아니다. 혹시 모르지. 엄마가 자전거 받아서 몰래 엿 바꿔 드셨을지도 모른다. 음, 그러고 보니 한동안 엄마가 호박엿을 즐겨 드셨지.
하여튼 우리 집은 조선일보를 보는데, 이 조선일보가 참 사람들한테서 욕을 많이 얻어먹는 신문이다. 물론 먹을 만 하니까 욕을 먹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조선일보에 좋은 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의외로 조선일보에도 좋은 점이 많은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주는 것 같아 참 안타깝다. 조선일보가 뭐가 좋냐고?
일단 조선일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읽을 거리가 있는데 그건 바로 오늘의 TV 프로그램. 여지껏 조선일보에서 이것보다 더 좋은 기사를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런 좋은 기사를 매일 매일 싣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은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특별히 한두 장씩 더 넣어주면서, 탤런트 전인화가 조선일보를 보고 있으며 여인천하를 만든 그 PD 아저씨도 역시 조선일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건 스포츠 신문이나 한밤의 TV연예에도 잘 실리지 않는 내용인데, 정말 특종이다.
그럼 조선일보에 실리는 읽을 만한 기사에 대해서는 할 얘기 다 했으니까 여기서 이만 접도록 하고, 이제 조선일보가 실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설명하도록 하겠다.
우선 날짜 지난 조선일보는 모아서 어디 어디 갖다 주면 두루마리 휴지로 바꿔주니까 가계에 도움이 되고, 밖에 놀러나갔을 때 흙바닥에 조선일보를 깔고 앉을 수 있으니까 돗자리 대신 쓸 수도 있다. 또 조선일보 위에다가 붓글씨를 연습할 수도 있으니 화선지가 절약되고, 가끔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아무 거리낌 없이 조선일보를 좍좍 찢을 수도 있으니 정신 수양에도 도움이 된다.
정신 수양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조선일보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가족을 화목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엄마나 큰 언니랑 다투고 나서 서로 말 안 하고 있다가도 다음 날 아침 조선일보에 실린 어느 기사를 보게 되면
"어머, 이런 것도 기사라고 실었냐? 정말 한심하다."
"어휴, 이 사람 기자 맞어? 자질이 의심스럽다 정말."
요렇게 맞장구치며 함께 조선일보를 꾹꾹 밟고 비판에 비난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서먹한 관계에서 벗어나 다정히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 정말 고맙다 조선일보.
끝으로 이렇게 고맙고 좋은 조선일보를 위해 쓴 소리 좀 해야겠다.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친일, 친미적이라고 하는데 그런 경향이 줄어들면 조선일보 보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신문들을 비교하는 건 재미있다) 그건 어떻게 하든 상관없고, 다만 제발 사실 보도만은 제대로 했으면 한다. 신문이잖아 신문. 사실만큼은 제대로 보도해야 할 거 아냐. 괜히 없는 이론 만들지 말고.
그리고 1쪽에 글자를 대문짝만하게 쓰는 것도 하지말고. 당장 내일 전쟁 날 것처럼 해 놓으면 심장 떨린다구. 또 그랬는데 전쟁 안 나면 조금은 맥 빠지거든. 난 새 심장인가, 또 속았나 하면서 말이지.
그리고 공짜로 영화 보고 밥 먹으면서 하루 온 종일 보낼 수 있는 비법에 대한 기사 같은 것 좀 쓰지 말고. 그 비법 한 번 써먹으려고 쿠폰에 마일리지 모으다가는 정말 카드 빚 쌓이겠다.
그리고 또 있어. 나라를 말아먹는 조기 교육열, 특히 영어 조기 교육열에 대한 기사 실으면서 그 다음 면에다가 영어 교육 광고 좀 싣지 말고. 아니면 그런 기사를 싣지 말든가. 원래는 어떤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기사가 실리면 그것과 연관된 광고는 싣지 않거나 아니면 광고 때문에 기사를 싣지 않는다고 하던데, 도대체 이건 조기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와 영어 교육 광고가 함께 실리니 의도가 뭐냐고? 내 눈에는 기사 자체가 광고로 보이던데. 아니면 조선일보의 수준이 기사와 광고의 독립성을 추구할 정도로 높은 건가?
아젠다인지 아 재수없다인지 조선일보 보다보면 내 무식함에 스스로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으이그.
* 어떤 신문을 구독하느냐에는 신문에 대한 선호도도 중요하지만 신문 보급소 사람들의 됨됨이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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